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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동종’ 고난 유랑사, 끝이 안보인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30 15:56
조회
600

문화재위원회 궁능분과 회의서
건립될 보호각 위치 변경 보고
덕수궁→고궁박물관 입구 변경
“불교계·흥천사와 협의 했었나”
불교계 위원, 일제히 문제 제기

학계·시민단체 ‘환지본처’ 주장
전문가들 “흥천사로 환수 타당
야외 보존·전시 적철치 않아”
“동종이 왕실유물인가” 지적도
문화재청, 불교계와 논의 예정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흥천사명 동종'의 모습. 덕수궁에 걸려있었으나 현재 보존처리를 위해 이운된 상황이다.국가지정문화재 보물 ‘흥천사명 동종’의 모습. 덕수궁에 걸려있었으나 현재 보존처리를 위해 이운된 상황이다.

비운의 성보 흥천사명 동종’(보물)이 다시 보호각 아래서 박물관 야외 전시물로 전락할 위기다. 유생들의 방화로 흥천사가 전소돼 사찰을 떠난 지 512년이 됐지만, 본래 자리인 흥천사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유랑의 시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위원회 궁능문화재분과위원회는 419일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회의에서 흥천사명 동종 보호각 건립 위치 변경에 대해 문화재청의 보고를 받았다.

이날 문화재청은 보존처리 완료 예정인 흥천사명 동종의 보호각을 덕수궁 즉조당 북측에 건립하려 했으나 부지 내 자재 반입과 동종 운반의 어려움이 있다흥천사명 동종의 보호각을 국립고궁박물관 입구로 변경하고자 한다고 궁능문화재분과위원회에 보고했다. 보호각의 모양은 8각 형태이며, 지상 1·높이 4.8m 규모다.

이에 불교계 측 궁능문화재분과위원들은 불교계와의 협의가 없었고, ‘흥천사사찰명이 명확한 성보문화재를 박물관 야외로 이동시키는 것에 대해 일제히 문제를 제기했고, 다른 궁능문화재분과위원들도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조가 발원해 조성된 흥천사명 동종은 1504(연산군 10) 12월 화재로 흥천사가 불타고, 1510(중종 5) 사리각까지 전소되며 갈 곳을 잃고 유랑해왔다. 기록에 따르면 흥천사명 동종은 동대문(흥인지문)을 거쳐 광화문의 종루로 옮겨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창경궁을 거쳐 덕수궁으로 이동했고, 2018년 덕수궁 광명문이 이전하며 흥천사명 동종은 보존처리에 들어갔다.

512년 동안 사찰을 떠나 이곳저곳을 유랑했던 흥천사명 동종은 그만큼 아픔도 적지 않다. 조선 전기 대표 범종임을 인정받아 2006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될 때까지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흥천사명 동종은 덕수궁을 찾은 관람객들이 수정액 등으로 종 내부에 낙서까지 해놓을 정도로 방치됐었다.

불교계와 학계는 흥천사명 동종이 유랑을 끝내고, 흥천사로의 환지본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실제 지난해 12월에 열린 한국미술사연구소 학술대회에서도 흥천사명 동종의 원만한 보존을 위해 본래 자리인 흥천사로 돌아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흥천사명 동종의 환지본처를 주장했던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연산군 당시 유생들이 불을 질러 흥천사가 전소됐지만, 연산군은 이를 불문에 부쳤다. 사실상 국가 권력의 비호 아래 사찰이 사라진 것이고, 이로 인해 흥천사명 동종의 유랑이 시작됐다면서 사찰의 성보문화재는 본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의미가 있고, 현재 새롭게 일신한 흥천사라면 동종의 보존관리 역량도 충분하다. 이제는 그 유랑을 끝낼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 최고 범종 전문가인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도 야외에 보호각을 세워 보존하는 것은 범종 보존에 좋은 방안이 아니다. 그냥 전시품 정도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타종을 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본래 사찰인 흥천사로 이운하는 방안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흥천사명 동종의 연구와 보존을 위해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살펴야 한다. 문화재청이 불교계와의 긴밀한 협의 속에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찰 성보문화재가 국립고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상근 문화재환수연대 대표는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유물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보존·전시하는 곳이라며 흥천사명 동종이 조선 왕실에서 발원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찰 성보로서 조성됐다. 이를 왕실 유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 용어를 공식 폐기하고 역사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용어로 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키로 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점 단위가 아닌 면 단위에서 가치를 발굴하고 활용하겠다는 것이라며 흥천사명 동종의 환지본처도 이런 정책적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소유권 유무가 아닌 과거 상처의 치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종의 흥천사 환지본처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흥천사 역시 동종의 환지본처를 바라고 있다. 흥천사 주지 각밀 스님은 흥천사 동종은 원래 자리를 찾아서 보존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며 덕수궁에서 경복궁 고궁박물관으로 이동하려 한다면 정릉 능침사인 흥천사로 오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재청은 우선적으로 조계종을 찾아 흥천사명 동종의 보호각 건립에 대해 설명하고 불교계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조선 왕실과 불교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문화재인 흥천사명 동종에 대한 최적의 보존·전시 방안을 마련하려 한다. 조선 왕실에서 불교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조명할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조계종 문화부를 방문해 보호각 건립 취지와 활용방안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찰로의 환수에 대해서는 쉽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궁능유적본부 다른 관계자는 흥천사명 동종은 사찰명이 확인되지만, 현재 소유는 국가 소유로 돼 있다. 이를 사찰로 돌려주는 것은 행정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이에 대한 정책 변화와 입법화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