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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회복재단 이상근 이사장에게 듣는다 “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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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2-05-03 10:19
조회
341

최근 ‘문화재’라는 명칭을 폐기하고 ‘국가유산’으로 대체한다는 정부 문화재위원회 등의 발표가 있었다. ‘문화재]의 의미는 재물적 재화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면서, 이런 관점에서 문화재를 “반환, 환수한다”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문화재 환수문제를 소유권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유산(遺産)이라는 명칭은 정신적, 역사적 관점이 중요하다”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산의 본래 자리, 즉 ‘고향’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상근 이사장은 “문화유산의 회복문제를 합법적 소유권의 유무가 아니라 ‘과거 역사적 상처를 치유한다’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실행되어야 한다”며, “2019년 독일의 한 박물관이 한국의 문인석을 조건 없이 반환한 것은, 문인석은 박물관이 아니라 묘소를 지키는 수호신일 때 더 가치가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은 과거 약탈이나 도난, 도굴 등 불법적 수단에 의해 반출된 것은 물론, 국가나 지역 등 공동체에 상징성이 높은 것, 그리고 설령 정당하게 취득했어도 유산의 가치가 본래 자리에 있을 때 더 빛나는 경우 등이다. 단지 소유권의 적법성 여부만 따지는 제한적 접근보다 역사적 문명적 관점에서의 설득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된다.

이에 본지는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과 “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있게 펼쳐본다.



▲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

 

논산이 고향이라구요? 고향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제 출생지는 연무읍 황화정리입니다. 지금도 황화정리에는 조상님들 선산이 있습니다.

채운면 이화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강경중학교에서 공부했어요. 중학교 재학 당시 한 학년 동창생이 600명이 넘어, 까까머리에 시커먼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통학하던 모습이 대단했어요. 거기에 여학교, 고등학교 등 강경 시내 거리가 온통 학생들로 넘쳐났죠.

그런데 올해 강경중 신입생이 63명이라는군요. 40여 년 만에 1/10로 감소했어요. 10년에 1할씩 감소해도 대단한 변화인데, 불과 40여 년 만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으니 도시화로 인한 지방 도시 소멸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어요. 또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심각한 수준이고요.

중학교 때 탁구를 좋아해서 탁구장에서 심부름하면서 며칠 밤낮을 지낸 적도 있어요. 당시 기억으로는 ‘대전고’ 진학반을 따로 편성해서 선행 학습을 시켰는데, 2학년 가을에 연합고사로 전환되면서 공부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탁구에 빠져 지냈죠.

그 후 10명의 동기가 대전고에 진학했는데, 이번에는 대학 졸업정원제가 시행되었죠. 입학생은 많이 선발하고 졸업은 어렵게 한다는 취지의 졸업정원제로 대학 입학이 어렵지 않겠다 싶어, 학업보다는 문학 활동에 더 빠져 지내다 동국대 경제과에 입학하면서 점차 ‘논산’과는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죠. ‘논산’은 명절이나 경조사 때나 찾는, 말 그대로 ‘고향’입니다.

(재)문화유산회복재단은 무슨 연유로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문화재 환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6년입니다.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청 서릉부에 있던 ‘조선왕실의궤’의 환수 활동이 본격적이었죠. 1922년 조선총독부가 약탈하여 반출한 지 8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일본 정부가 반환을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기에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환수 활동은 그야말로 낙숫물이 바윗돌을 뚫는 과정이었어요.  일본의 정부,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을 만나 설득하였고, 한국사회의 여론 형성과 참여도 중요하게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때 문화재반환 문제도 다 해결되었으니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죠. 더구나 일본 왕실을 상대로 한 환수는 더욱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요.

그래서 찾은 해법인 북한과의 공동 반환요구였습니다. 북한은 일본과 미수교국으로 일제강점기 피해보상을 받지 않은 상태였고 2002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평양방문 때 3대 수교 조건 중에 하나가 문화재반환 요구였으니 남북의 공동반환요구는 유력한 방도였죠.

이같은 여러 활동을 진행되면서, 2011년 12월 조선왕실의궤 167책을 포함 조선왕실도서 1,205책이 완전히 반환됨으로써 환수 활동이 일단락됩니다. 그 후 2012년 서산 부석사 불상 국내 반입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할 길을 찾아달라는 불교계의 요청을 받아 활동하던 중 특정 환수 이슈에만 국한하는 활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타 분야로 확장성 있게 활동하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졌고요,  2014년 서울시에 비영리단체로 ‘문화재환수국제연대’를 설립하여 활동합니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는 불법성이 확인된 국외 문화재의 환수만을 목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반출해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있는 문화재 등 ‘우리 안의 불법반출 문화유산의 회복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을 2017년 설립하고 국회에 등록하였어요.



▲ 2009년 평양 양각도 호텔, 남북합의서 채택 당시     ©

 

▲ 2010년 일본 아사이 신문에 보도된 한국문화재반환 소식     ©

 

▲ 2015년 독일 본, 유네스코총회 현장에서 일본 군함도 등 세계유산 등재 반대활동, 중국 신화통신 인터뷰     ©

 

재단의 조직과 인적 구성은 어떠한가요?

국회에 등록한 법인 중 문화유산을 다루는 법인은 ‘문화유산회복재단’이 유일합니다. 재단은 현재 매월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시는 회원이 1,500여 명이고 국내 10곳 지부와 미국, 일본 등 국외 8곳의 지부가 있습니다. 국회에 등록한 만큼 여야 국회의원 35명이 참여하는 제21대 국회의원 연구모임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의 사무국 역할도 수행하고 있어요.

문화유산회복운동이 단발성 이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과 확장성, 계승성을 담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화유산 관련 법과 제도의 개선, 환수 논거 개발, 국제 사회의 원칙과 방향 등을 조사 연구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 연구원과 학술위원 그리고 여러 방향의 활동을 수렴하기 위해 자문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사회는 의사 결정 구조로서 역할을 수행합니다. 문화유산회복운동은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미술 등 종합적인 분야가 참여해서 이루는 일종의 종합예술 운동과도 같아서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동안 문화유산회복재단의 대표적 성과 3개만 꼽는다면요?

첫째는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으로, 특히 한국의 문화유산이 있는 국가와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의 문화유산이 소재하고 있는 국가는 22개국이고 장소는 600여 곳입니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22개국의 주요 도시에 지부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소장자 측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유산의 가치를 확장하는 일에 더 집중할 것입니다.

둘째는 국회의원연구단체인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의 결성과 활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2년 ‘국외문화재 보호 및 환수’ 관련 조항이 추가되는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국외 문화재 환수 활동이 본격화되고 2016년 지자체도 ‘국외문화재 보호 및 환수’ 활동에 참여하는 내용으로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 것이 문화유산회복운동에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이를 근거로 현재 충남도 등 13곳의 지방 정부가 ‘국외 문화재 보호 및 환수’ 조례를 제정하였고, 제21대 국회의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의 결성은 그동안 활동에 바탕을 둔 결실입니다.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은 문화유산의 회복과 문화자산으로 가치 발굴을 위해 정기적인 정책토론회를 하고 ‘문화재보호기금법’ 개정 등 법률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국외로 반출된 문화유산 중 되찾아야 할 목록을 연구 조사하였다는 점입니다. 1965년 한일 문화재협상에서 가장 문제는 반환받아야 할 문화재 목록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2014년 도쿄재판에서 밝혀졌듯이 일본 정부의 조직적 은폐로 당시 한국정부가 반환을 요구한 4,400여 점 중 1/3 수준인 1,432점만 돌려받았죠. 그 중에 국보는 단 2점에 불과했어요. 다시 말해 정작 중요한 것은 반환받지 못했고 짚신, 막도장, 우체국 간판 같은 것으로 넣어 숫자만 늘린 짓을 저질렀어요. 그래서 국보급 등 꼭 회복해야 할 문화유산의 목록 작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난 십수 년간 세계 각국 150여 곳, 국내 200여 곳의 관련 시설 등을 방문하여 조사 연구를 통해 과제를 정리했다는 것은 향후 활동의 방향과 목표, 과정을 정리한 것과 같아요. 이는 대단한 성과입니다.

앞으로 계획 중에서 특히 1~2년 사이에 특정된 목표가 무엇인지요?

우선은 10여 년째 활동 중인 서산 부석사 불상의 완전한 원상회복입니다. 사건의 성격상 주로 법률적 대응 방식을 위주로 하지만, 한일불교계의 협력, 국제사회의 이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6월 30일 일본 측의 재판 참여가 이뤄지면 ‘불상’을 물건으로 갖고 싶은지?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하고 미래에 전달할 것인지? 하는 아주 중요한 관점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일본에 있는 수많은 한국 문화유산의 취득 경위 소명 등에 대한 일본 측은 국제사회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백제 문명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백제의 소중한 유산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부여 출토 백제미소보살’, ‘공주 출토 보살반가사유상’ 등은 백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유산입니다. 지금 일본에 있는데 이를 되찾아 오는 일에 충남도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시대의 잔재인 ‘문화재보호법’을 폐기하고 ‘국가(민족)유산법’으로 대체 입법하는 일입니다. 현 문화재보호법은 일제강점기의 ‘조선보물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과 1950년 일본에서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을 답습한 낡은 유산입니다. 마침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변경하고 유산의 분류도 ‘자연, 문화, 사람(무형), 역사(권역)’으로 구분함으로 좀 더 완전성을 이루게 되었으나,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없으면 무늬가 바뀌는 결과가 올 수 있죠.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 명실상부 문화의 힘으로 문화강국을 실현하는 데 기틀을 놓아야 합니다.


 
 

충남지역 문화유산에 대해 순회 전시계획이 있던데, 어떤 계획인지요?

충남도 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 활동을 5년째 하고 있는데 고향을 떠나 국내에 있는 ‘충남 국보 특별전’과 국외에 있는 ‘백제반가사유상전시회’를 충남도 등에 제안했고, 추진할 계획입니다. 반출된 충남 국보는 논산 출토 3건, 공주 2건(백제금동보살입상, 조선 금영측우기), 천안 2건(고려 천흥사 동종, 고려 보협인석탑), 부여 1건(고려 이신기 묘법연화경), 예산 1건(덕산 출토 청동유물) 등 9건입니다. 여기에 보원사지 출토 철불 등을 소개하여 충남도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백제계 반가사유상이 정작 백제의 본토인 충남 지역에는 온전한 사유상이 한 점도 없고 부여박물관에 하반신만 남은 사유상이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죠. 그래서 조사했더니 일본과 프랑스, 미국에 10여 점이 있어 이를 일괄하여 백제계 사유상의 전모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유산의 가치를 알게 되고 소장자 측에서도 원산지역의 정성과 노력을 이해함으로 유산의 회복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추진하고 있어요.



▲ 논산 출토 청동유물, 이지다 지로의 소장품으로 소개되어 있다. 사진 문화유산회복재단     ©

 

▲ 논산 출토 청동유물이 소개된 1929년 신라예술품전람회 포스터     ©

 

▲ 논산 출토 국보 청동유물, 사진 문화재청     ©

 

재단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텐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은? 아울러 700호를 맞는 놀뫼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문화유산의 회복과정은 지루하고 복잡하고 뜻밖이기도 해요. 가져갈 당시 힘센 자들이 좋아서 가져갔는데 이젠 돌려달라고 하면 ‘알았어?’ 하고 금방 돌려주지 않죠. 기약 없는 세월을 즐겨야 하고, 종합예술운동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설득 조율하면서 한 방향으로 흐름을 만들고 예상하지 못한 이슈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등 복잡다단한 과정입니다.

이 같은 과정은 종종 정부의 역할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죠.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뜻에 공감하지만, 선뜻 ‘내가 이것은 해볼게’하고 나서지 못합니다. 재단은 유산의 연고 지역을 중심으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를 제공함으로 유산의 상속인인 주민이 스스로 나서도록 돕고 있어요.

이렇게 스스로 나선 사람을 ‘문화 의병’이라 칭하고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의병들이 십시일반하여 나서고 있습니다. 문화 의병 3만 명 양성 목표가 이뤄지면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해결할 일들이 많아집니다. 얼마 전 프랑스인이 가지고 있던 조선 문신 북계 조용석의 북계문집 목판도 재단의 힘으로 국내 환수하였듯이, 지방 정부는 내 지역의 유산은 내가 보전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놀뫼신문 지령 700호 축하합니다. 문화유산의 회복 운동만큼 풀뿌리 지역 언론 운동도 어려움의 연속일 것입니다. 어려움을 헤쳐나갈 때 가장 큰 힘은 ‘동행’입니다. 놀뫼신문 독자님들과 논산 시민이 저희 문화 의병에 동참하여 주시면 용기백배하여 용맹 정진할 것입니다.



▲ 201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방문 당시 한국문화재 조사 모습     ©

 

▲ 2021년 제2회 백제포럼 주제발표     ©

 

▲ 2021년 국회 문화유산회복포럼 회의     ©

 

▲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 문패 달기. 이명수 국회의원     ©

 

▲ 박병석 국회의장 사무소 개소 기념 내방     ©

 

▲ 중국 여순박물관 소장 고려 동종 조사     ©

 

[대담] 전영주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