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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의 반대로 좌절된 한국정부의 대마도 반환

작성자
chrf
작성일
2020-11-04 17:08
조회
1454
문화재 반환과 아울러 한국에서는 대마도까지 반환하라고 요구를 하였다.

대마도는 일본이 강점한 후 대륙침략의 기지로 이용되었고 앞으로 침략 일본의 재기를 막기 위해서 ‘대마도를 한국영토로 복귀함을 대일강화회의에 건의’하자는 제안을 허간룡 의원이 49명 의원의 찬동 날인을 얻어 1948년 2월 17일 본회의에 회부하였다.

1949년 1월 7일 이승만 대통령은 ‘개헌과 민족진영 통합 등의 정국 현안에 대해 기자와 문답’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 배상 요구는 어느 시기까지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개인의 생각으로는 350여 년 전 임진왜란 시까지 소급하고도 싶으나 우선 최소한도 과거 40년간에 피해 배상을 요구하겠고 대마도도 찾아야 하겠다. 임진란 시 대마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한국인의 비석이 지금 동경박물관에 있으니 그것도 찾겠다.”고 하였다.

당시 우리 정부는 맥아더사령부를 통해 대마도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다. 국내에서는 대마도를 반환 받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대마도 문제에 있어서 맥아더는 의지가 없었다. 김용주가 주일공사로 맥아더에게 인사를 갔을 때, 맥아더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침략 일본에서 평화 일본이 되어가니 서로 동양평화를 이뤄 가는데 힘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맥아더는 “한일관계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이 대통령이 대마도를 한국 영토라고 몇 번이나 성명을 발표해 양국 간 감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짙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리에 맞지 않으므로 앞으로 계속해서 대마도를 한국 영토라 주장하면 대일강화회의(對日講和會議)에 한국이 참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점을 대통령께 전해달라고 했다. 김용주는 맥아더의 이야기를 편지를 써서 보고하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으며 이후 이 주장도 펴지 않았다. 결국 대마도 반환 문제는 맥아더의 반대로 좌절되고, 이후 6∙25가 발발하고 이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정규홍의 불법 부당 반출 문화유산의 회복, 어떻게 할 것인가? 발표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