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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찾기범국민운동’의 첫 대상이 된 그레고리 핸더슨의 반출 문화재

작성자
chrf
작성일
2020-11-04 17:10
조회
8473
핸더슨이 발간한 《한국도자기들》도록 표지


<사단법인 한국문화재보호협회 결의문>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은 우수하고 풍부한 문화유산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으나 6∙25동란과 그 이후의 행정기능 약화 등으로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불법 반출되는 불행한 사태를 겪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문화재란 그 나라의 민족과 원위치, 전통의 역사배경과 관련해서만이 그 가치가 인정된다는 유네스코의 권고문과 같이 국외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는 원소속국인 한국으로 반환되어야 한다. 이에 문화재보호협회는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다시 찾기 위해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는 한편, 우선 소재가 밝혀진 문화재로부터 그 반환운동을 전개한다. <중략>2. 우리는 59년부터 63년까지 주한미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하였던 외교관 신분을 악용, 62년 불법으로 한국문화재 143점을 반출해 간 그레고리 핸더슨의 파렴치한 행위를 규탄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한국문화재 전부를 반환해 줄 것을 촉구한다.

1974년 6월 사단법인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이사장 이선근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회 성명서>

1. 외교관의 신분으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주재국의 문화재를 은닉, 또는 반출해 갔다함은 불법행위로 단정, 이에 지체 없이 반환할 것을 촉구한다.

2. 핸더슨씨의 성명이 보도된 바에 의하면 당시 박물관장이었던 김재원 박사와 협의한 바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고 전하나 김박사는 당시 해외에 체류 중이었으며 또한 그의 위치가 반출에 협조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당 본인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3. 핸더슨씨는 귀국할 때 그 반출을 주한미대사관 총무과에서 했다고 책인 전가함은 매우 부당한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4. 문화재의 불법반출은 한국의 법률상으로도 용인될 수 없을뿐더러 외교관의 자격으로서 타국의 문화재를 자국정부의 승인도 받지 않고 본국에 반입했다는 것은 또한 부당한 소위로 본다.

5. 1970년도 쥬네브에서 열린 유네스코총회에서 문화재에 대한 권고결의문에도 위배됨을 자성하기 바란다.

1974년 6월 21일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회 이사장 선우인선

1974년에 한국문화재보호협회가 입수한 그레고리 핸더슨의 소장품 전시목록은 당시 해외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을 하게 하였다. 이 전시목록은 1969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그레고리 핸더슨이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하면서 《한국의 도자기들 -그 다양한 예술(그레고리 핸더슨부부 소장품)》이라는 도록을 발간하였는데 이때 소개된 도자기류만 해도 143점에 달했다. 그 가운데는 1~3세기의 가형토기, 적색토기호, 신라차형토기 등을 포함한 경북지역에서 출토된 신라, 가야시대의 유물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청자과형주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중요문화재급이 수두룩하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2차대전 당시 미해병대의 일본어 통역관으로 있으면서 1948년 7월 처음으로 미대사관 제3서기관의 자격으로 서울에 온 적이 있었다. 이 당시 헨더슨은 “영국의 빅토리아 · 앨버트박물관 이외에는 거의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도자기류가 상점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으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에 대한 가치를 못 느끼고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었다. 이때부터 헨더슨은 수천 달러를 한국 문화재 구입에 사용하여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상당한 문화재를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부산피난 후 인천에 보관 중인 대부분의 문화재가 파괴되고 그 중 도자기, 불화, 수십 점이 완벽한 상태로 보관되어 김포공항을 통해 직접 군용기편으로 도쿄까지 이송하였다. 그 후 헨더슨은 1953년~1955년간 교토에 있으면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으나, 유물 구입은 몇 점에 그쳤고 1958년~1963년 동안 주미대사관의 문정관으로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구입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 당시 핸더슨이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높다는 소문이 고미술계에 퍼지면서 가만히 있어도 대구 등지에서 문화재를 갖고 오는 거래상들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그레고리 핸더슨의 소장품도록이 공개되자 문화재 관계자는 물론이고 각계의 관심 있는 한국인은 모두 되찾아야한다고 분노했다. 해외에 흩어진 한국 문화재가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핸더슨의 경우에는 그것이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신분을 이용한 불법적인 반출이었기에 한국 국민의 공분을 샀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문화재보호협회가 전개한 해외에 반출된 ‘한국문화재찾기범국민운동’의 첫 대상이 되었다.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이선근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네스코결의문을 상기시키면서 1974년 6월19일에는 핸더슨 씨가 반출한 문화재를 반환해 달라는 공문을 주미대사관과 미국무성에 전달했다. 에릭슨 미대사관대리대사는 이선근 박사가 전달한 공문을 미국무성과 대사에게 성의껏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핸더슨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촉구하고, 그의 행위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핸더슨은 국내 학자에게 자기의 소장품 일부를 연구 목적으로 공개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은 끝까지 합법성을 주장했다. 그는 합법적인 상거래와 적법한 절차에 의해 반출했다고 주장하면서 또한 자신의 문화재는 대부분이 문화재보호법이 통과된 1962년 1월 10일 이전에 반출되었기 때문에 법에 의한 재산권 침해는 부당하다는 견해를 발표한바 있다.

그는 문화재보호법이 통과된 이전에 반출했기 때문에 불법 반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문화재보호법이 생기지 이전에도 해외로 나가는 모든 물품은 세관의 검사를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속에서 발견되는 한국 문화재는 모두 압수 처리했다. 1950년 소위 ‘금부처 사건’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그레고리 핸더슨은 외교관의 신분으로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한국의 중요문화재를 반출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것이 불법이고 양심을 저버린 행위인 것이다.

핸더슨의 수집품은 현재 하버드대학의 새클러 박물관에서 매입하여 진열하고 있다. 꼭 찾아와야 하는 문화재이다.

-불법 부당 반출 문화유산의 회복, 어떻게 할 것인가? 정규홍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