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대마도를 접수하려 간 한국인- "(1364)제46화 세관야사(11)", <증앙일보>, 1975.06.16

작성자
chrf
작성일
2020-11-0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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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제46화 세관야사(11)" 발췌
이때 인천부두국 간부로는 검역관 표양문(작고·인천시장 역임)·김재곤(민의원·작고)·이우봉(감시과장·작고)씨 등이 있었다. 해방직후 세관원들은 기고만장하였다. 그 하나의 예가 당시 부산세관의 책임자였던 송두영씨(부산세관장 역임·현 통관업)의 회고담이다.

송씨는 해방직후 어느 날 감시선을 타고 밀수감시차 홍도방면에 출동했다가 일본 대마도에 들어갔다.

일본인 도사와 경찰서장을 물러놓고

『나는 한국의 부두국장인데 대마도를 접수하러 왔으니 빨리 대마도의 행정권을 이양하라』
고 큰소리쳤다.

당황한 일본관리들은 일본점령군 당국으로부터 사전지시가 없었다며 본국에 조회하기까지 우선 객사에서 쉬면서 기다려달라고 요청하고 송씨를 일류요정에 안내하여 융숭한 접대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부두 간부로는 총무과장 최수암(작고)·김판수(작고)·감정과장 김재경(현 자동차보험회사 지점장)·세무과장 진동룡(현 통관업)·감시과장 이상철(현 통관업)씨 등이 있었다.

여기서 잠시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직후 세관제도의 변천과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태평양전쟁이 일본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외국화물의 수출입이 격감돼 일본은 세관을 폐쇄하고 해운관계 각 기관을 통합하여 해운국이라는 단일기구로 발족시키는 동시에 한국에서도 1943년12월1일부터 세관대신 부두국이라는 통합기구를 두었다. 이 부두국제도는 1946년4월 군정청기구가 개편되어 세관이 다시 재무부산하로 발족하기까지 계속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