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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의 증손 :금강부수(錦江副守) 이주(李鑄)의 지석(誌石)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1-02 11:51
조회
132


年七十其年四月二十五日葬于廣州陰

村里壬坐丙向之原夫人盧氏籍交河考

諱燦尙衣院直長祖諱公奭戶曹正郎曾

祖諱思愼領議政妣全州柳氏山陰縣監

軫之女旣笄歸于公生三男四女嘉靖丙

午十月初十日先公逝享年五十翌年二

月二十日葬于公塋之左男長膺岭晉川

令次景岭晉原令次泰岭晉山令女長適

別坐南宮愷次適兵使白惟儉次適忠順

衛柳思謙次適士人卞景遠晉山生一男

三女皆幼別坐生三男一女男長渡次澤

16자 11행으로 모두 176자를 진사(辰砂)로 쓰고 유약을 발라 구운 백자 지석이다. 내용의 교하 노씨 세계가 보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노사신(盧思愼, 1427~1498) 증손의 묘지석이라고 추정했지만, 정밀하게 번역하고 《선원록(璿源錄)》을 확인한 결과 노사신의 증손서(曾孫壻)인 금강부수(錦江副守) 이주(李鑄)의 지석(誌石)이다. 지석이 원래 몇 매였는지 확인하기 어려우나 내용으로 보면 앞에는 금강부수의 이름과 자, 호 등을 쓰고 그 선대와 어머니 사조(四祖)를 기록하고 출생 연월일을 적은 다음 연차에 따라 그의 행력과 특별히 드러낼 행적을 적은 다음 아무 해 아무날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있었음이 분명하여 앞에 최소 2매는 더 있었을 것이다. 이남은 이 지석은 이주(李鑄)의 향년이 70이었고 장사를 지낸 날짜와 장소, 그리고 부인 노씨의 사조(四祖)와 자손을 기록하면서 외손자를 기록한 부분이 끊겼다. 이 뒤에는 외손자와 신위(申偉)에게 출가한 서녀(庶女)가 추가로 기록되었고, 그에 이어서 금강부수 이주의 행적을 명(銘)으로 압축하였을 것이니 최소 1매는 더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지석은 모두 4~5매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금강부수(錦江副守) 이주(李鑄)와 그 부인 교하노씨의 묘소는 광주(廣州) 음촌리(陰村里) 임좌병향(壬坐丙向)의 언덕이라고 쓰여 있는데, 오늘날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일대이다.

금강부수는 세조의 증손자로 전주이씨 덕원군파이다. 그 세계를 정리하면

세조(世祖)→덕원군(德源君) 서(曙)→영천도정(寧川都正) 감(淦)→금강부수(錦江副守) 주(鑄)이다.

《선원록(璿源錄)》 덕원군파(德原君派) 권1에 수록된 금강부수의 가계도를 살피면 위 묘지명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금강부수 이주는 정3품 영천도정(寧川都正) 감(淦)의 아들이므로 정4품 수(守)가 되어야 하지만 어머니 서씨가 서거정의 서자 서복경의 딸이었던 까닭에 강등하여 종4품 부수(副守)를 제수한 것이다. 이에 관한 실록의 기사를 첨부한다. 이주의 아들들은 정5품 영(令)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