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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寒洲集》 《理學綜要》 《四禮輯要》 목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1-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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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집(寒洲集)》 목판은 모두 2매인데, 1매는 《寒洲先生文集》 卷21에 수록된 〈답곽명원(答郭鳴遠)〉의 별지(別紙) 마지막 부분이고, 다른 1매는 《寒洲先生文集附錄》 卷2에 실린 아들 이승희(李承熙, 1847~1916)가 작성한 이진상의 〈행록(行錄)〉이 실린 부분이다. 곽명원은 이진상의 제자로 의병장인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이다. 과종석이 물은 사례(四禮)에 대한 의문점을 별지에 관혼상제 순으로 답한 것이다. 행록은 아들 이승희가 기억하는 이진상의 행적을 조목조목 정리한 것이다. 이는 1926년 중간(重刊)한 목판으로 인출한 중간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간본은 목활자본이었다. 이 목판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주산로 236-152[대산리 914-3]에 있는 삼봉서당(三峰書堂) 강당 우측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인데 산실(散失)된 것의 일부이다. 이곳은 본디 이진상이 노년에 거처할 정자를 지으려고 마련해 둔 땅이었는데, 이진상이 죽은 이후 주문팔현(洲門八賢)을 중심으로 성주 지역 유림(儒林)이 이진상을 기리기 위해 서당을 세웠다. 1895년(고종 32) 아들 이승희가 거창 정천(井泉)의 원천정(原泉亭)에서 목활자로 『한주집(寒洲集)』을 발간한 이후 성주 지역 유림과 안동 지역 유림 간에 갈등이 일어난 이후, 성주 삼봉서당은 『한주집』의 교정 및 개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어 1927년에 개정판 『한주집』이 성주 삼봉서당에서 간행되었다. 1907년(순종 1)에 대구 지역에서 일어난 국채 보상 운동(國債報償運動)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대계(大溪) 이승희가 성주군 국채보상회 회장을 맡게 되면서 성주 삼봉서당은 성주 지역의 국채 보상 운동 추진 본부로 기능하였다.

○ 《이학종요(理學綜要)》 목판은 1점인데 이진상이 경전 중에서 성리의 요지를 모아 엮은 유학서로 그의 나이 환갑인 1876년(고종15)에 지은 것이다. 1884년 이를 거듭 교감하여 22권의 필사본으로 정리하였다. 공이 별세한 이후 목활자로 《한주집》을 발간하고 뒤이어 2년 뒤인 1897년에 아들 이승희와 문인 허유(許愈, 1833~1904) 등이 22권 10책의 목판본으로 출간하였다. 목판은 성주 삼봉서당(三峰書堂) 강당 우측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인데 산실되었다.

전체적 구성은 권1은 천도(天道) 제일상(第一上)으로 이지대원(理之大原)·명이지두뇌(明理之頭腦)·명이유동정(明理有動靜)·명이기선후(明理氣先後)·명이기이물(明理氣二物), 권2는 천도 제일하(第一下)로 이지대원, 권3은 천명, 권4·5는 성(性), 권6∼8은 심(心), 권9·10은 정(情), 권11은 총요(總要), 권12∼15는 학(學), 권16은 행(行), 권17∼19는 사(事), 권20∼22는 통론으로 되어 있다. 목판은 권 14의 학(學)에 대한 것이다.

 

내용은 일반적으로 이기(理氣) 및 그 상호관계, 천명과 본연지성, 심·성·정, 존심양성(存心養性)·궁리치지(窮理致知), 오륜(五倫) 및 수기(修己)에 관한 사항, 의식·거처·수업·예절 등에 관한 사항 등을 밝혔다.

통론에서는 이의 근본이 되는 뜻을 밝히고, 유가에서 기가 이를 해한다고 인식하는 문제와 이단(異端)에서는 기를 주로 하고 이를 멸하는 문제, 그리고 성현이 이를 주로 하는 연원을 밝히고 있다. 논리 전개는 자신의 설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경전과 선유들의 설로 설명한 뒤 ‘안(按)’이라 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 《사례집요 (四禮輯要)》 목판은 한주 이진상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예학서를 참고하여 사례(四禮)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1865년에 지은 것인데, 이후 1885년에는 거듭 교감을 마쳤으나 생전에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의 사후인 1906년에 아들 승희(承熙)와 문인 곽종석(郭鍾錫) 등에 의하여 목판본 16권 9책으로 간행되었다. 권두에 이진상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장석영(張錫英)의 발문이 있다.

권1·2는 통례(通禮)로 묘제(廟制)에 대한 49개 항목과 종법(宗法)에 관한 33개 항목, 권3에는 관례 7개 항목, 권4는 혼례에 관한 91개 항목, 권5∼14는 상례로서 권5의 총론에 초종(初終) 등 97개 항목, 권6에 성복(成服) 등 34개 항목, 권7의 상례추설(喪禮推說)에 유명용부(遺命用否) 등 77개 항목, 권8에 본생복의(本生服儀) 등 115개 항목, 권9는 장례(葬禮)로 3일장 등 76개 항목, 권10에 장례추설(葬禮推說)로 권장(權葬) 등 62개 항목, 권11은 우제(虞祭)의 장일우(葬日虞)·졸곡(卒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禫祭) 등 111개 항목, 권12에 상례추설(喪禮推說) 112개 항목, 권13에 부모해상(父母偕喪) 등 88개 항목, 권14는 객상(客喪)·거상추설(居喪推說) 등 67개 항목, 권15·16은 제례로서 권15에 총론·시제(時祭)·기제(忌祭)·묘제(墓祭)에 관한 66개 항목, 권16은 제례추설(祭禮推說)로 54개 항목 등이 수록되어 있고, 끝으로 각종 도식(圖式) 101편과 인용서목 등이 있다.

본서는 분량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전문적인 예설서(禮說書)라 할 수 있다. 주해의 각 단원마다 전거(典據)와 출처를 밝히고 있는데, 권말의 인용서목에는 『의례(儀禮)』·『오례의(五禮儀)』·『예기(禮記)』·『대대례(大戴禮)』·『퇴계집』·『율곡집』·『고봉집』·『서애집』·『사계집』 등 170여 종의 방대한 양의 문헌명이 수록되어 있다.

한주의 『사례집요』는 퇴계에서 대산으로 이어지는 예학의 흐름 위에 있는 『상변통고』라는 퇴계학파의 예학총서의 입장을 따르는 한편, 율곡에서 사계로 이어지는 예학의 흐름 위에 있는 『가례증해』라는 율곡학파의 예학총서를 가례의 문헌연구를 위하여 『상변통고』와 동일한 대상으로 인정하고, 그것들이 가지는 충돌지점을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특징은 첫째, 『사례집요』는 퇴계학파는 물론 율곡학파의 입장까지 고려한 조선후기 가례문헌의 총결산을 위해 저술된 책이며, 둘째, 『사례집요』는 『주자가례』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시속을 참작하려는 율곡학파의 가례문헌연구방법과 달리, 『주자가례』를 넘어선 새로운 가례서를 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책이고, 셋째, 『사례집요』는 한주 사후 그의 문인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특히 장석영의 강례서인 『의례집전』과 행례서인 『구례홀기』 및 곽종석의 행례서인 『육례홀기』 등은 모두 한주의 예학사상과 『사례집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저술들이다.

이 목판은 성주 삼봉서당(三峰書堂) 강당 우측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인데 산실되었다.

-기호철 소장 문화유산연구소 길-